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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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5일

하나님 영광을 소망하며

엉킨 매듭의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한 해를 보내고, 성탄과 새 해 새 날을 맞이하는 즈음에 흑암을 뚫고 쏟아지며 다가오는 태양 빛만을 보며 감탄하지 말고, 시간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도 희생할 각오로 산을 오르는 어떤 이는 산이 있어 산을 오른다고 하지만, 내 안에서 산을 오르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기 때문에 산을 보고 산을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존재인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서인 소요리 문답(The Shorter Catechism)의 1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기뻐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될 힘이 생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당하실 때 뿔뿔이 흩어졌고 도망쳤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고나서는 순교하기까지 담대하게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카타콤이라는 지하 감옥에서 지내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오히려 불붙는 신앙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교회당과 많은 직분자들이 있는데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에 역부족이라고 한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많은 기독교계의 행사와 모임이 있지만 생명의 감격과 하늘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연기만 나는 것 같은 심령의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붙는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비난과 불평의 연기만 나서 눈과 코가 매운 신앙생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고 하지만 내심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더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보다 힘 있는 사람들이 더 대접을 받아야 하고, 성령님의 능력보다 인간의 계획과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먼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 그 다음에 그 영광이 내 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도 총체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의 소중한 끝자락을 지나 새로운 시작에 서면 평소에 생각 없이 흘린 말과 행동들도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아픈 가슴이 될지라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 여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비온 뒤의 햇살이 생명감에 충만하고 평소의 햇살보다 더 아름답듯이, 오늘의 아픔과 고통 뒤의 은혜는 더 큰 영광을 선물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말려라.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 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정진규의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모세가 삭막한 광야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을 때의 광경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출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의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며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삭막하고 어려운 현실의 삶 가운데서도 맹렬한 불이 붙은 것 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2012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