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일
샬롬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365번이나 거듭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불안과 염려 속에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의미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의 삶에는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 질병과 건강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직업과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두려움, 특정한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안과 두려움이 인간을 사로잡습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값 사망을 대신 지불해주시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샬롬’이 선포되고 하늘나라의 잔치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는 이 세상에서 참된 ‘샬롬’을 선포하며 잔치하는 기쁨의 영성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눈다면 누가 ‘샬롬’을 선포할 수 있습니까?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가해자인 형들과 13년 동안을 노예생활 감옥생활 했던 피해자인 요셉 사이에서 누가 ‘샬롬’을 선포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피해자인 요셉이 ‘샬롬’을 선포해주어야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길 가던 두 사람이 싸워서 경찰서에 잡혀갔는데 한 사람은 때렸고 다른 사람은 맞았다면, 누가 ‘샬롬’을 선포할 수 있습니까? 맞은 피해자가 ‘샬롬’을 선포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서도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것은, 바로 ‘샬롬’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해서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보면, 예배생활, 기도생활, 헌금과 봉사 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핍박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불공평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화평이 없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잘 믿는 사람을 먼저 피해자가 되도록 하셔서, ‘샬롬’을 선포할 수 있는 화평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샬롬’을 선포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복 주시고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샬롬’을 선포해야 합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산을 사랑하는 자는 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를 사랑하는 자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 때문에 담대하고 용맹스러워집니다. 우리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죽음 앞에서도, 억울하고 힘든 상황 앞에서도, 문제나 어려움 앞에서도, ‘샬롬’을 선포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두려움이 내 생각이나 마음을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한 번만이 아니라 멈추지 말고 계속 ‘샬롬’을 선포하며 전진해야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용기가 있다는 것은 비록 겁은 나지만 앞으로 전진 하여 어떻게든 헤쳐 나가는 것이다. 두렵고 떨리지만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보다 두려움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이 땅에서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께 집중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샬롬’을 선포하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인생 전체를 승리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