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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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8일

우리 주님 부활 하셨습니다.

토요일 한글학교 예배 시간에 고난주간에 대해 설교하신 전도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침을 뱉고 때리고 그리고 옷도 다 벗겼다고 말씀하시면서, 한 학생을 불러내어 겉옷을 벗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티셔츠도 벗기려고 했더니 학생은 필사적으로 거부하더랍니다. 그 아이도 친구들 앞에서 옷을 벗으려니 부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전도사님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김을 당하실 때 얼마나 수치스러우셨을까,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실 때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마음이 아파 와서 설교 후에 계속 울었다고 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한글학교의 어린 아이가 옷 벗기를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만약 십자가의 고난과 수치를 부끄러워했다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로서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부끄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교묘하게 주님을 유혹했을 때 일언지하에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오늘날 신앙의 넘어짐은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는 가를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도 부끄러워하는 것을 부끄러운지 모르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주님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것을 부끄러워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사망 권세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만약 내가 교회의 낮은 자리에서 성도를 섬기며 희생하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신앙이라면 실패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부인하면서 얻은 세상에서의 이익과 명예와 쾌락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실패의 길입니다. 진리를 지키느라고 외롭고, 말씀을 순종하느라 약해지고 낮아졌다면 그런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정작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안에 감추어진 무분별한 이기심이요, 까닭 없는 분노요, 자존심 때문에 생기는 불순종과 가면을 쓰고 있는 거짓과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엡5:11-12)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제주도의 한 초등학교 6학년이 쓴 ‘우리 아빠’ 라는 제목의 짧은 동시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처음 알았다. 아빠가 말을 못 하신다는 것을 / 어디엔가 갈 때면 초라한 추리닝을 입고 한마디 말도 못 하시는 아빠가 정말 싫었다. / 그런데 / 내가 손을 크게 다쳤을 때 정신없이 추리닝을 입고 나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신 아빠 / 말은 못하고 아빠 등 뒤에서 엉엉 울어 버렸다.’ 아빠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나를 책임져줄 아빠가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아빠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움입니다. 그 잘못을 겨우 초등학교 6학년생이 깨달았습니다. 만약 소녀가 자신의 잘못을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야 깨닫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지금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까?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