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6일
귀 있는 자는.......들을지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짧은 시간에 어머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리워했던 자식을 오랜만에,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보고 헤어져야 하는 어머님의 마음에는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몇 십분 동안이고 계속되는 말씀에, 또 몇 번이고 반복되는 말씀에 공손하게 ‘네, 알겠습니다.’ 라고 경청하는 것이 어머님의 마음을 풀어드리는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과 불편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도 바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드리는 것이지 않았습니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원죄를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도 바로 잘 듣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 관계가 회복될 뿐만 아니라 내가 하기에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형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장수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도망자 모세는 가시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애굽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나단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지혜를 구하므로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시고 구하지도 않은 다른 복까지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엘리야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므로 우상숭배에 빠져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을 건지고, 3년이나 닫힌 하늘 문을 열어 소낙비가 쏟아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제외한 여타 종교는 귀를 기울여야 할 살아있는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종교의 공통적 특징은 말 못하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반드시 주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없기 때문에 틈만 나면 주문을 열심히 외우는 것이 더 큰 가치를 갖게 되고, 자기 신념과 열심이 더 돋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는 내가 먼저 말씀을 들을 때 잘못된 관계가 풀어지고 좋은 관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절대기준인 성경은 하나님을 향해 토로하는 인간들의 말을 묶은 책이 아니라, 인간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 귀한 부흥회가 연이어 있었습니다. 주중 부흥성회인데도 열심을 내어 은혜 받을 그릇을 준비한 성도님들과 각 국별로 모든 예배 준비와 찬양, 픽업과 방송, 식사와 간식 접대 등으로 섬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원팔연 목사님이나 서임중 목사님은 각 교단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목사님들이신데, 주의 종들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열매 맺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회복하여 평안하고 행복한 신앙생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이민생활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