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7일
내공이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특성 중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꼬집은 내용 가운데, 등산복은 에베레스트 산이라도 오를 복장인데 오후 쯤 되면 막걸리에 취해 비틀거리며 동네 산을 내려오는 멋진 등산복의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또 햇빛을 가리는 파라솔이 8000개나 줄지어 있는 해운대가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일광욕을 싫어해서 파라솔을 치면서 왜 그리 많은 사람이 해변엘 나오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십자가가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람 눈에 띄도록 달아놓은 빨간 십자가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각자 더 높은 첨탑에 더 눈에 띄는 십자가를 다는 성도들의 열성적인 노력 덕분에 한국 개신교회는 1960년대부터 40년 만에 열 배 넘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한국 교회의 성장은 멈추었고 이제는 한 해 1000개씩 교회가 새로 생겨나고 1300개씩 문을 닫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경쟁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밖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신앙은 겉모양의 열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환경을 이기는 내공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 바람에 맞서 하나님의 꿈을 붙잡고 전진할 수 있는 내공으로 채워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예수 믿는 우리가 기대하고 의지할 분은 오직 성령님 밖에는 없습니다. 요즘 우리는 스펙이 화려하고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들로부터는 아무런 힘을 느끼지 못하는데, 오히려 스펙을 포기하고 단순하게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 미친 듯 열정을 쏟아 붓는 그 무엇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힘을 느낍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도 우의정, 좌의정 청탁까지 했던 자리 욕심을 포기하고, 두려운 예루살렘도 떠나지 않는 결단으로 전혀 기도에만 힘썼을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이 이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적을수록 행복한 인생, 성공하는 인생에 가까워집니다. 세 개를 희생하여 더 소중한 두 개를 얻고, 두 개를 희생하여 더 소중한 한 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결국 큰일을 할 수 있고, 하게 됩니다. 소중한 가치를 위해 결단하면 삶이 단순해지고, 삶이 단순해지면 힘이 생깁니다. 복잡한 것은 무기력으로 빠져들게 하지만, 단순한 것은 기력을 찾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 충만으로 단순해지면, 그러한 나의 작은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큰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결단할 때는 결단할 줄 알아야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발전이 있게 됩니다. 망설이는 시간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생에게 가장 의미 없는 시간입니다. 나무가 과감하게 잎을 떨굼으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것처럼, 사람은 엉뚱한 고집과 화려한 과거의 잎새들을 떨어뜨릴 줄 알 때, 비로소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는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저는 5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한국 선교대회와 베데스다 대학 이사회, 그리고 영산 국제 신학 심포지움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공항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화요일부터 시차를 뛰어넘는 강행군의 일정 속에서 마지막 금요일 철야 예배까지 인도하고 잠간 눈을 부친 후 아침에 짐을 싸서 공항에 나오면, 아무리 체력 안배를 신경 써도 소용없는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그래도 지금 마음만은 결연합니다. 내일이 성령강림 주일이고, 또 1박2일의 기도원 성령대망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