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8일
인생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보물은 보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보물로 여기는 사람에게 보물이지, 보물을 모르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보물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기적에 대해서도 같습니다. 주님의 기적의 귀함을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은혜이지만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결코 놀라운 은혜일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기적이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기대하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님은 항상 미래지향적이셨습니다. 제자들은 맹인이 지금 당하는 고난은 과거의 악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질문했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맹인의 고통의 원인이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통도 과거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것이라고 해석하십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우상숭배에 빠지면 전생에 죄가 많아서 오늘 이렇게 되었다는 과거 지향적 윤회사상의 포로가 됩니다. 또 잘못된 성경적 율법주의에 빠져 ‘저 사람은 과거에 어떤 죄를 지어서 안 됩니다.’고 하면서 모든 원인을 과거에서 찾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올바른 믿음은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금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갈대 같았던 시몬을 장차 반석 같은 베드로가 될 것으로 바라보고 불러주신 주님처럼 우리의 시각이 미래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큰 고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는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왜 진흙에 침을 뱉고 이겨서 그것을 그의 눈에 발라주시며 치료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단지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말씀 한 마디로 꾸짖으심으로 끓어오르던 광란의 바다를 잠재운 분이십니다. 죽은 나사로의 시체가 나흘이 지나 이미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무덤을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 말씀으로 명령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신 분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12해 혈루병으로 고통당하던 여인은 주님의 옷가에만 손을 대어도 질병의 근원이 깨끗이 치료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맹인아 눈을 떠라!” 말로 명령하심으로 간단하게 고쳐 주시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손을 얹어 기도하심으로 순식간에 눈을 뜨게 하지 않으십니까? 하다못해 맹인으로 하여금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서 고쳐주셨다면 훨씬 수월하게 치유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맹인과 인격적 만남, 인격적 사귐을 갖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맹인은 자신을 위해 진흙을 이기시는 주님의 손놀림을 온 영혼으로 느낍니다. 주님의 숨소리를 똑똑히 듣습니다. 주님의 부드러운 숨결과 체취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끝으로 부터 전해져 오는 따스한 주님의 체온이 맹인의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지금 주님의 인격과 맹인의 인격이 맞부팆치면서 뜨거운 불꽃을 튀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차피 내 사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기를 원하는데 좀 쉽게 일으켜 주시지 왜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하십니까? 내 자녀, 좀 빨리 변화시켜 주시지 이렇게 속 썩이며 기도하게 하십니까? 내 질병 좀 한 번에 고쳐주시지 이렇게 고생하며 치료받게 하십니까? 내 신앙 한 번에 장로 권사 되게 하시지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하십니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깊은 인격적 사귐이 있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느껴야 합니다. 이런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으로 나의 인격이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올바른 믿음으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참된 변화를 이루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2011년 7월 10일 목회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