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5일
중보기도의 사역화를 꿈꾸며
오늘날은 기독교의 세속화, 교회의 위기에 대해서 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의 능력에 의해서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화와는 반대로, 세상의 지혜와 수단과 방법 등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가 세상과 같은 수준으로 타락하는 것을 세속화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백여 년 전 종교개혁을 불러온 시대는 성경 말씀이 독점당하고 성도들은 영적 무지로 인해 깊은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제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는 돈으로 성직을 사고파는 행위가 만연해 있었고, 도덕적, 윤리적 타락과 함께 심지어 ‘영혼구원’까지 돈거래 수단으로 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종교개혁은 순수한 신앙을 고민하던 사제들의 양심선언에서 시작됐고,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개혁정신은 오늘까지 이어지며 교회의 참된 모습을 점검하는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의 우리들 교회는 종교개혁 정신을 잘 따르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오늘의 우리들 교회는 종교개혁을 불러온 중세 로마 가톨릭의 모습을 너무도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영적인 혼돈과 무지 속에 이단과 사설이 흥왕하고, 돈으로 목사와 같은 성직을 매매하고, 교회의 직분들은 남발되고, 윤리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이 처음 믿을 때의 뜨거움과 신선함을 계속 발전시키고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뜨겁게 기도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의 열기가 식어져버리고, 처음에는 무슨 일이든 아멘하며 봉사하던 사람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헌신 없는 신앙으로 변질되고, 처음에는 감사로 순종하던 사람이 원망과 불평으로 남을 탓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 같은 신앙이 되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 등을 통해 이루어진 1차 종교 개혁은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여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신앙이 되게 한 것이라면, 이제 2차 종교 개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말씀을 들은 성도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역화가 이루어져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마지막 때, 나의 신앙이 사역화 되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역화 가운데, 첫째 사역이 중보기도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구속의 사역을 완성 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성경은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시며, 중보기도 사역은 주님께서 지금 친히 계속 하고 계신 사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사역에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디모데 전서는 목회자 바울이 청년 목회자 초년생 디모데를 독려하는 목회서신입니다. 2:1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첫째로”라는 말은, 우선순위의 의미로 ‘가장 먼저’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보기도 사역은 우리 성도들이 첫째로 감당해야 할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부활의 승리자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우리의 인생 역전 드라마는 만들어집니다. 중보기도의 사역화를 통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은혜, 영적 그릇이 크게 성장되는 은혜와 더불어 영적 전쟁의 승리를 확실하게 체험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