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4일
그리스도인의 열등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언론지에 '한국 특집' 기사가 실렸는데, 전쟁을 극복한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과 K-pop 등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의 국회정치와 윤락문화, 그리고 교회분포도 지도를 싣고는 결론적인 말로,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지 기자도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국회도 인간들이 모였으니 그럴 수 있고, 유흥업, 퇴폐업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가장 거룩해야 할 교회는 그런 상징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씁쓸한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자기들보다는 나은 수준이 되어달라고, 자기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파수군의 역할을 해 달라고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진짜 문제는, 교회에 드러나는 외적인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열등감입니다. 즉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교회를 비하하고,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천박한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송인규 교수가 쓴 [자아가 자아를 엿보다]라는 내면세계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스스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문제는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바른 자아관의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작은 일에도 흔들리고 넘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개인에 대한 자기비하와 공동체에 대한 자기비하 두 종류로 자기 비하를 설명하면서, 이 두 가지의 뿌리는 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때로 무엇인가에 내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겸손히 자신을 바라보면서 나의 진정한 내면을 발견하였기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반사적으로 “나는 적합치 않습니다. 나는 못합니다.”가 대답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그 다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겸손이 아니라 자기비하입니다. 나를 존귀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 대한 불신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지역 교회의 귀한 리더들을 많이 만나 뵙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계신 교회 리더들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존재하는 한 있을 수밖에 없는 교회연합기구에 대해 아예 안 된다고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도 교회연합기구의 잘못된 관행이나 습관, 세상의 논리에 휘둘림을 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실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새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너무 문제에만 마음 빼앗겨서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긍정의 선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분노하고 실망만 하고 좌절하고 포기만 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교회는 신랑 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님을 맞이할 위대한 신부입니다. 이 땅에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할 유일한 희망이며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함께 하시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 위에 서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 영광의 하나님이 체험되어지는 산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