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8일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2월, 연합군은 독일의 숨통을 끊고자 힘을 모아 '가운데 토막작전'(The Battle of Bulge)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전은 심한 폭우가 내리는 밤에 미군으로 위장한 독일군이 몇 대의 지프에 나눠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연합군이 세워 놓은 방향표시판들을 아무렇게나 바꾸어 놓음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연합군의 각 부대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전체 작전이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로서 큰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동일한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거나 이단의 가르침에 넘어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마16장에 나오는 베드로입니다. 처음에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사역을 인간적인 시각, 즉 자기의 생각으로 바라보게 되자 오히려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기에 이릅니다.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섭리보다 자기 생각이 더 컸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잘못된 인간의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반대로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의 눈으로 모든 일을 해석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로 태어나서 채색옷을 입으며 사랑받는 아들로 살다가 열일곱 살부터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노예가 되어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를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도 들어가는 결코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에게서 태어나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이 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까? 그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선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해서 가족과 민족과 열방을 구원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자신이 버림받고 오해 받는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이요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기근으로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처음 왔을 때, 애굽의 국무총리가 바로 자신들이 팔았던 요셉임을 알고 두려워하니까 요셉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뒤,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을 끝내고 여전히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동일한 말을 했습니다. (창50:19-21)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형제들이 요셉을 판 그 고통의 일조차 하나님 섭리의 안목에서 해석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미국 땅이 성탄절을 기념하는 기쁨보다도 할로윈 데이를 기념하는 귀신이나 괴물들의 형상이 더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나의 어떤 고통과 문제보다 크신 분이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자기를 보는 것이 지혜요,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 더 커지고 깊어지고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섭리로 삶을 해석하는 승리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