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8일
작은 감사도 아름답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힘들었던 한 날을 보내고, 내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 페이스 북에 하루 일과를 써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빠른 시간동안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셔서 뜻밖에 큰 힘을 얻으며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올라온 댓글 가운데 ‘목사님 그렇게 바쁘시면 언제 기도하세요?’라는 글에 제 마음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저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지만, 반드시 답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은 즉시 이렇게 답을 썼습니다.
‘되어지는 일의 한계 상황에서 (내가) 약해질수록 기도의 깊이는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순종의 행진 가운데서 잠시 자동차에 앉아서 ’주여‘ 할 때 다가오는 주님 사랑의 터치는 놀라운 감격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샬롬!’
그리고 그것은 제 진심이기도 했습니다. 기도의 환경과 시간이 충분하지 못할 때도 내 중심의 기도를 하나님은 소중히 들어주시는 분이심을 체험합니다. 이것은 감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사가 잘 되고, 애들이 공부를 잘 하고,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는 등, 크고 좋은 일이 있어서 당당하게 드리는 감사도 받아주시지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드리는 작은(?) 감사를 하나님은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1620년 12월26일 추운 겨울 플리머스 (Plymouth) 해변에는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막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들이 외치는 감사의 소리가 가득 했습니다. 그들의 현실은 감사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난 사람이 당초에는 150명이 넘었으나 2개월 정도의 대서양 횡단 중 1/3의 사람이 죽고, 신대륙에 도착한 102명은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또 반가량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낯선 땅에서의 농사일과 나무를 베고 땅을 파고 집짓는 일들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은 아직 죽음의 땅과 같은 황무지 벌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한데도 씨를 심을 수 있었음을 감사했습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싸우면서 오막살이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괴롭히고 죽이는 인디언도 많았지만 낯선 이방인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쳐준 인디언으로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미국의 개척은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의 감사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감사를 받으셔서 미국을 오늘과 같이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1864년 링컨 대통령은 11월 넷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선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경건한 조상이 이 아메리카 땅에 감사의 씨를 뿌린 그 신앙을 만대에 계승하기 위하여 이 날은 국가 축제일로 정한다.’ 오늘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 감사절에도 옛날과 같은 터키와 음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의 마음과 그 마음을 드렸던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 우리들에게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실한 감사는 작은 감사도 아름답고, 하나님은 어떤 작은 감사도 기쁘게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