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6일
10분의 기적(?)
세계사를 객관적으로 잘 살펴보면 13세기까지는 중국이 유럽을 앞서는 문명이었습니다. 유럽에 비해 중국은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 상인조직, 제직 제철공장도 있었습니다. 세계최초의 백과사전, 종이나 화약을 중국에서 처음 발명했고, 인도양이나 태평양을 건널 때 사용된 대양 항해술을 먼저 갖춘 것도 중국이었습니다. 15세기 초반 명나라의 정화(鄭和)가 역사상 가장 큰 함대를 이끌고 남해원정을 감행했는데 그때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까지 갔다 왔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앞선 문명과 다방면의 지식을 가지고도 그것을 올바르게, 잘 활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자기나라가 최고라고 여기는 중화사상의 함정에 빠져 다른 나라의 발전상을 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음의 영향력으로 나날이 변화되고 있는 서양과 달리 앞을 생각하지 못하고 멀리 뻗어나가지 못했습니다. 지식을 실제적인 삶 가운데 연결시키는 실천력이 서양에 비해 현저하게 뒤진 것입니다. 결국 근대에 들어와서 중국은 서서히 서양에 역전당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기독교가 바탕이 된 서양문명은 동양권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840년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중국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화약은 중국이 만들었지만 현대식 총포를 만들어서 그 화약을 활용한 것은 서양이었습니다. 인쇄술이나 대양 항해술 역시 동양에서 먼저 개발했지만 그것을 발전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보급하고 실천한 것은 서양이었습니다. 아는 것이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할 때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역사입니다. 진정한 능력은 아는 것이 실천력으로 행해질 때 증거 됩니다. 예를 들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을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실제로 칭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와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하지만, 기도와 말씀 속에서 깨달은 것을 내가 실천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말씀을 순종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과 자신을 이기며, 멀리보고, 앞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움직이게 됩니다. 참 믿음은 반드시 행동의 변화,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에,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오후 교회에서 있었던 에녹회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잔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교회의 핵심가치 중 한 가지, 부모를 공경하고 후손들을 축복하는 천국가족 공동체가 되는 일을 위해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증거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마친 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소중하여 잠간 서서 바라보는데, 정말 가슴 벅찬 감동이 넘쳐흘렀습니다. 마치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처럼 하나가 되어 신속하고 질서 있게 탁자를 옮기고 의자 카버를 다 모으고 정리정돈을 마치는데 약 1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10분의 기적, 그 주인공들의 환하고 진지한 얼굴 모습이 가슴에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에 등장한 무명의 주인공들, 오병이어 도시락을 드렸던 소년이나, 자신의 소유 전부를 헌금한 과부나,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들까지 그들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무명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자기 이름을 내거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했던 사람들이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큰 상급과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CCTV가 필요 없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말씀을 듣고 행동하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