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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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9일

해석의 차이가 수준의 차이입니다.

성경을 보면 해석의 차이에 의해 수준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17)는 정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정보를 가지고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 하고 유혹하는 원수마귀의 수준에 맞추어 자기 편한 데로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해석을 했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은 12지파의 대표를 뽑아 그 땅을 정탐하게 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는데, 해석의 차이에 따라 그들 삶의 수준 차이가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아낙자손의 대장부와 비교하며 메뚜기처럼 해석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런 수준으로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해석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의 주인이 되는 수준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치러 왔을 때 기드온과 3만 2천명의 사람들이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미디안의 군대는 13만 5천명이라는 정확한 정보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정보를 듣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이 나오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결국 기드온과 300명만 남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승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작은 것을 좋아 하셔서 300명만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왜 3만2천명 전부 다 충성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보를 듣고 두려워 떠는 해석의 수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가 없어서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대화를 나눌 때, 성령님이 주신 정보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수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행20:23)는 정보를 듣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들으면 ‘어려움이 있으니까 안 가게 하시고 피하게 해주시는구나!’라고 해석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자기 유익한 쪽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정보를 성령님께서 알려주실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가겠다고 해석합니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해석합니다. 이렇게 정보를 가지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해석하지 않고, 주님께 충성하는 쪽으로 해석하면 자꾸 정보를 더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의 정보를 거리낌 없이 알려주는 것처럼, 충성하면 좋은 정보가 모이게 됩니다. 만약 만인이 다 아는 것을 자기만 모르거나 자기에게는 사람이 안 모인다고 한다면 정보가 제대로 사용되지 않거나 악용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고 성경을 읽고 들으며 깨닫는 것이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이제까지 나의 해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고 마지막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일이라면 ‘절대 긍정, 절대 충성’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 긍정, 절대 충성’의 해석은 과정을 하나님과 동행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해석의 차이가 수준의 차이를 만듭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