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3일
억울함과 회개
지난 주간 많은 분들을 만나야 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이 옳다는 것을 주장할 때마다 교회와 목사님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힘주어 말합니다. 물론 청중이 목사님들이기 때문에 열정으로 강조하는 말이려니 이해는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무려 열 번이상이나 그런 말을 반복하니, 대접까지 해드리며 욕을 먹는 듯해서 은근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세상에 억울한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때때로 분명히 내 잘못이 아니어서 뭐라고 변명하고 설명하고 싶은데 영어가 안 되어서 버벅거리다가 다 뒤집어 써버릴 때 억울합니다. 하다못해 어떤 사람이 방귀를 뀌고 내린 엘리베이터를 막 탔는데, 나를 따라 타는 사람이 코를 막으며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볼 때도 억울합니다. 이렇게 억울한 세상을 살다보면 아담과 하와가 따먹고 자기들 배만 부른 것을 가지고 우리가 왜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고난은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겠습니까? 죄도 흠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죄인을 구하시려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모진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한두 대 맞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아예 몸을 찢고 피를 다 흘려 대신 죽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늘보좌에서 천군천사의 찬양을 받으시던 거룩한 예수님 입장에서는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는 것이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그것도 얼굴에 흐르는 땀이 변하여 피가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모든 조롱과 멸시, 천대와 고통을 다 당하고 죽으셨지만 그러나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졌습니다. 나를 향한, 그리고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 되었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하고, 불의하고, 추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영생의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주님 앞에 내 억울함(?)을 내려놓고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회개하는 사람에게 말입니다.
2주 전 주일 오후였습니다. 제자훈련 16기 젊은 부부들과 함께 교제 순서를 따라 ‘헌금하는 법’을 공부하는데 갑자기 성령님의 음성이 제 안에 들려집니다. 이제까지 주의 종으로 생활비를 받으면 그 해의 첫 열매는 항상 하나님께 드려왔었는데, 2014년 1월 첫 번째 생활비를 첫 열매로 드리지 않았던 것에 대한 거룩한 책망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이유야 확실히 있었지만, 첫 열매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을 증거 하며 살겠다는 우리 가정의 믿음이, 지진에 건물이 흔들리듯 흔들렸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성령님께 제 교만과 미련함을 조용히 인정하고 항복의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첫 열매를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던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을 얻어 거의 3달이 지난 첫 열매를 회개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유야 있었지만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웠지만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듯 자연스러웠습니다. 현실의 어려움보다 오히려 더 큰 믿음이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가득한 확실함은 누구든지 정말 주님을 만나면 억울하지 않다는 것, 회개의 기쁨과 자유가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