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4일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어린이 주일은 1856년 6월 둘째 주일에 미국의 메사츄세츠주의 레오날드 목사님이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귀중함을 가르치며, 부모들에게는 어린이들이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1860년 메사츄세츠주의 교회에서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샤론의 꽃’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 정식화되어서 1868년경부터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꽃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만해도 ‘어린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이놈, 어린 것, 애새끼’라는 말로 불리어 졌었는데,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민족의 미래는 다음세대를 귀히 여기는데 있다고 확신하고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존대 말 쓰기 운동을 벌리며 처음으로 '어린이'(어리신 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921년의 일이었고 ,다음해인 1922년 5월1일에 처음으로 '어린이 날' 제정을 제안하고, 1923년 방정환 선생님의 열의 있는 주장으로 어린이 명절을 해마다 지켰으나, 일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에는 다시금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1957년 5월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 곧 꽃주일’로 정하여 지금까지 지키게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바르게 잘 자라야 내일의 교회와 사회가 보다 밝아질 것을 알면서도, 이민생활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생활하다보면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게 되기도 합니다. 특별히 한국인의 윤리형성에는 유교가 깊은 영향을 끼쳤는데,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만만치 않은 역기능적인 장애물 역할도 있습니다.
유교의 핵심은 ‘예(禮)’, 즉 사람을 섬기고 위하는 도리로, 효(孝)나 충(忠)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유교는 섬겨야 할 대상을 언제나 강한 자, 높은 자, 연장자로 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겨야 합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섬기고,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기고, 나이 어린 자가 연장자를 언제나 공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찬물도 아래 위, 순서가 있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어른부터 마십니다. 오히려 반대가 되면 버릇없는 죽일 놈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순으로 인해 어린이나 장애인, 즉 사회적 약자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고 꾸짖는 제자들이 무안하도록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마19:14)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는 일일이 안수하여 주셨습니다. 또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더 충격적인 말씀도 하셨습니다. (마18:5,6)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주님과 동일시하십니다. 거기에 더하여,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여도 큰 연자 맷돌 매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무섭게 경고하시며,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오늘 어린이 주일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어린이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