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5일
"‘그늘’마저 사랑하는 사람 "
새 옷을 사면 빨리 입어보고 싶고, 새신을 사면 나가서 자랑하고 싶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또 열심히 하는 정당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이긴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삶의 동반자로 선택한 그리스도인들은 더 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또 자기를 부인하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보이는 것에만 더 관심을 갖습니다. 외모, 건강, 물질, 재산, 직분과 같은 보이는 것들을 잘 관리하라고 합니다. 또 자기 PR, 자기 홍보의 시대라고 하여 자신을 과장하거나 업적 중심의 삶을 강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는 부분을 관리하는데 소홀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낭패를 만나게 되고 무너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월호의 참사가 그런 것이고, 한국 기독교의 정체와 추락이 그런 것입니다.
미국을 떠나 한국에 와서 보니 요란한 교회 행사들과 직분자들의 언행에 비해서 믿는 자의 진실성이 보이지 않거나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저급한 주장만을 내세우는 모습이 무엇인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희망이 돼야 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기대는 큰데 금방 속이 보이는 사람이 되거나 증거 할 아무 간증도 없는 사람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과 사람을 실망시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본능과 세상의 흐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올바른 결단과 의지로 십자가를 붙드는 참된 신앙의 삶을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지 않는 ‘그늘’에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늘진 곳 출신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늘진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그늘진 동네에서 묵묵히 일하며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늘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100명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 하려면 최소한 100가지 이상의 은밀하고 그늘진 일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만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늘진 수고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바로 그런 공동체를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과 복음의 능력은 분명히 증거 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세월호의 참사와 같이 비정상이 정상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적당히, 대강대강, 얼렁뚱땅이 아니라 확실한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다시 오실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가 인간적 이익을 위해 성스러운 직분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안 되고, 교회에서는 직분만 받고나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하고 무서운 생각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주님의 나라를 위해 그늘진 곳에서 십자가를 지는 분들은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실수가 없으신 예수님은 그늘진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토요일 오전 집회를 마치고 저녁 집회를 준비하는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를 글로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음 주일, 다시 뵐 때까지도 주님 은혜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