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6일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지으셨으며,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증거 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고, 말씀을 통해 새 역사가 시작되며, 말씀이 심기어 질 때 사람은 변화되고, 천국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비유설교 중 첫 번째도 바로 말씀의 씨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가르침이신데, 똑같은 말씀의 씨가 떨어져도 길가, 돌짝밭, 가시떨기 밭에서는 열매가 안 맺어지고, 좋은 땅에서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팔레스타인의 길은 밭과 밭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밟고 밟아서 굳어진 땅입니다. 그런 곳에 씨가 떨어지면 흙속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새들이 와서 다 쪼아 먹어버립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해서 깨뜨리지 못한 자아와 고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은 윤리적 도덕적인 말씀은 받아들이지만 정말 우리를 살리는 영적인 말씀은 못 받아들여서 결국 마귀가 와서 말씀을 다 빼앗아가 버립니다.
돌짝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에 동의도 하고, 설교를 들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신앙의 싹을 보여서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도 하고 순종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합니다. 말씀이 그렇게 좋다가도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이 있으면 억울해 하고 못 견뎌 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일이 좀 힘들어지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반드시 돌을 캐내는 아픔이 필요합니다. 고난은 진짜 중요한 것을 잡게 하고 깨닫게 하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마음의 돌들을 캐내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가시떨기 밭은 말씀과 함께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그리고 욕심들이 말씀에 대한 사모함보다 큰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할 때에도 그들은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기보다는 세상을 더 좋아하였던 것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주의 종들과 유명한 간증자들 중에도 처음에는 분명히 말씀의 은혜가 있었는데, 세상의 지위, 명예, 권력, 물질도 같이 사랑하다가 끝에 가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세상 따라가려고 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난 후에 자꾸 세상 흉내 내려고 와인 한 잔 마시고, 노래방 노래 부르고, 놀러가려고 하다가 하늘나라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밭은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신앙의 기본은 받아들이려는 수용성의 태도에 있습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다른 것은 못하는데, 말씀만큼은 정말 잘 받아들인다면 놀라운 새 역사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반대로 다른 것 다 잘해도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다 실패로 끝이 날 수 있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서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겠다고 선포한 종교 개혁가들은 위대한 새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볼링을 할 때 핀을 전부 다 쓰러뜨리는 스트라이크가 나오려면 반드시 가운데 앞에 있는 킹핀을 쳐야만 합니다. 이처럼 신앙의 원칙 중의 원칙, 기본 중의 기본은 바로 말씀으로의 회복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진정한 부흥도 진정한 개혁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꿀벌들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약 560만개의 꽃을 찾는다고 하는데, 나는 말씀을 잘 받기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들으며, 누구를 본받으려고 하며, 누구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