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6일
한 사람의 선이 아름다운 역사를 만듭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었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6.25 전쟁까지 터졌습니다. 결국 그 소년은 수원에 있는 미군 부대에 하우스 보이로 취직했는데, 그곳에서 ‘칼 파워스(Karl Powers)’라는 미군 상사를 만나게 됩니다. 남달리 성실하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소년을 눈여겨본 칼 파워스 상사는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돌봐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칼 파워스 상사도 물질이 넉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팔레치아 산맥의 한 탄광촌에서 태어났습니다.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고작 10가구가 모여 사는 미국에서도 깊은 산속 마을이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한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도 가난 때문에 군에 자원입대를 해야 했었고 바로 그 군대생활 중에 더 가난한 한 한국 소년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6.25 전쟁으로 3만 4천여 명의 미군이 죽었던 시기이기에 대부분의 미군들은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칼 파워스 상사는 그 소년을 데리고 미국에 가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귀국 기회를 무려 6번이나 포기해야만 했었습니다. 전쟁 중에 경험하는 엄청난 문제나 어려움, 위기보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였습니다. 결국 칼 파워스 상사는 그 소년을 미국에 데리고 왔고 유명한 기독교 사립 고등학교인 밥 존스 고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을 돕기 위해 자신은 돈이 많이 드는 사립 대학교를 포기하고 2년제 교대에 입학했습니다. 때로는 모자라는 소년의 학비를 댈 돈을 모금하기 위해 지역신문에 한국에서 온 그 소년의 이야기를 싣기도 했었고, 자신의 형과 직접 거리 모금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소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대학 공부도 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결국 그 소년이 목사가 되기까지 공부를 다 마치고 마침내 한국에 돌아간 후에야 칼 파워스 상사는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소년을 돕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과정에서 그는 혼기를 놓쳐 결혼도 하지 못한 채 평생 홀로 살아야 했었습니다. 칼 파워스 상사가 도와주어서 목사가 되어 한국에 돌아온 그 소년이 바로 김장환 목사입니다. 김장환 목사는 한국 최대의 침례교회를 이룬 훌륭한 목회자이며, 극동방송 회장, 또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침례교 연맹의 총회장을 역임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 김요셉 목사가 쓴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라는 책에 이런 아버지 김장환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미국 산골 마을의 가난한 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가난한 한 사람을 도운 아름다운 선행이 한국과 세계 기독교에 큰 획을 긋는 한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니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경제 불황 속에서의 이민생활이 전쟁 같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래서 불평과 원망, 염려와 근심이 가득해진다 할지라도,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나의 마음을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부터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오히려 내가 살고 이 땅이 살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드러나는 존귀한 역사는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눅10:37)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