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1일
저주를 두려워하지 말고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주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영적인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내면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말’입니다. 사랑과 진실의 말은 사람에게 생명과 변화를 주지만, 반대로 미움과 저주의 말은 죽음과 상처를 줍니다. 사람은 질그릇 같이 약하기 때문에 작은 말에도 충격을 받습니다. 특히 나쁜 말은 마음에 날카롭게 새겨져 잘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인터넷의 댓글을 읽고도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부정적이기 때문에 살리는 말보다 죽이는 말이 훨씬 더 쉽고 많습니다. 올림픽 선수가 그렇게 열심히 잘하다가 조그만 실수를 해서 경기에 지면 비방의 말을 퍼붓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헌신해오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작은 허물이 드러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미움과 저주의 말을 쏟아 붓습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 세상을 붙들고 있는 원수마귀는 이런 부정적인 말로 우리를 옭아매고 주눅 들게 합니다. 온 세상을 어두움과 두려움, 미움과 저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저주도 복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회복과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무섭게 저주합니다. (삼상17장43-44)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키가 거의 3m, 사람의 두 배 길이나 되는 칼을 든 장수가 외치는 저주인데도, 다윗에게는 전혀 효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골리앗이 말한 저주가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만드셨습니다. 골리앗이 죽어서 짐승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의 표적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누가 나에게 싫은 말을 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를 외치며 선악을 분별하는 말은 우리를 살리는 말이 아닙니다. 나를 살리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와 최고 진리의 말입니다. 내 마음에 정의의 말이 아니라 은혜의 말이 있어야 새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독경하는 성경암송은 하나님의 은혜가 영혼 속에 채워지게 하는 큰 복입니다. 어떤 말이 나오느냐가 내 영적인 상태이고 말의 실력이 내 영적 실력입니다. 예수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두운 세상에서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나름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데도 내 주변, 내 가족, 내가 속한 공동체가 기쁨과 감사로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살리는 은혜의 말보다 정의의 말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당신의 수고가 너무나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당신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당신은 정말 소중하고 기대되는 인생입니다. 당신과 함께 해서 너무나 좋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바로 지금부터 살리는 말을 입으로 계속 선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