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4일
공평입니까 희생입니까?
요즘 세상은 자기주장의 소리가 이곳저곳서 봇물 터지듯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이렇듯 넘치는 자기주장의 근거는 공평입니다.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촛불을 들고 소리를 외치고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건강하고 올바른 자기주장이 나쁠 리 없지만 그러나 자기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에 맞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근사하긴 했지만 그러나 원전을 없애면 몇 배나 오를 전기 요금에 대한 준비와 각오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공평의식입니다. 밥을 먹어도 공평하게 1/n 로 나누어 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그런 주장에 맞추어 ‘김영란법’을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대의 사람들에게 잃어버리기 쉬운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희생과 섬김에 대한 아름다움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희생이 없어지는 만큼 깨어지는 가정은 더 많아질 것이고, 결혼과 출산은 급격히 줄어들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희생이 없어지면 일의 성취에 대한 보람과 감격은 그만큼 사라지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지막 보루와 같은 기독교 신앙에서도 공평의식의 영향으로 희생과 섬김이 사라지게 되면 십자가 신앙도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고 하늘의 능력과 기쁨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젊은 시절 인도의 간디에 마음이 흠뻑 젖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책들 가운데, 간디가 신문에 실었던 ‘일곱 가지 사회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서민들의 사랑을 받던 ‘청년 인도’라는 싸구려 주간신문 1925년 10월22일자 제7권 43호에 간디가 썼던 7가지 사회악은 이렇습니다. ‘원칙 없는 정치, 일함 없는 부의 축적, 양심 없는 쾌락추구, 개성 없는 지식축적, 도덕성 없는 통상교역, 인간성 없는 자연과학, 그리고 자기희생 없는 종교’
간디는 책상에 앉아 선과 악을 말하는 탁상공론의 이론가가 아닙니다. 당시 영국의 무력적 식민통치에 맞서 비폭력적 저항운동을 펼쳐나가는 현장에서 직접 산전수전 다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 것들이었기에 더욱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자기희생이 없는 종교’를 사회악이라고 말한 간디는 18세인 1887년, 영국의 런던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유학생활을 할 때부터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며 많이 연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간디는 ‘기독교인들은 의식적인 예배와 행사만을 즐길 뿐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며 ‘예수님은 좋다. 그러나 기독교는 싫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능력을 나타낼 때는 다 자기희생이 있을 때였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의 페루 단기 선교가 그랬지 않습니까? 현장에 가서 섬겼던 분들이나, 보내며 기도했던 분들이나, 여러 모양으로 선교를 도운 분들 모두에게 자기를 희생하는 증거들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열매와 간증이 풍성히 나타났습니다. 우리들의 신앙과 삶의 뿌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이 내 삶에 기초가 될 때,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과 복이 흐르는 삶이 될 것입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