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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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6일

구원과 변화의 복을 누리기 위해

예수를 믿는 삶을 크게 두 가지로 표현한다면 ‘구원과 변화를 이루는 삶’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마귀의 종 되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절망의 사람이 희망의 사람으로, 불평의 사람이 감사의 사람으로, 어두웠던 사람이 기쁨의 사람으로, 미움의 사람이 감사의 사람으로, 문제 메이커가 피스 메이커로 변화되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 안에서 이것을 인정하고 또 한 두 번의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에 스스로 실망하거나 다른 사람이나 세상 앞에서 본이 되지 못하여 마음 아파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 전능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 쪽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에게는 선함이 없습니다. 만물보다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미 마음에 꽉 찬 자기 생각은 자기가 찾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들으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마음의 욕심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합니다. 똑 같은 햇빛에도 얼음은 녹고 진흙은 굳어집니다. 똑 같은 물을 마시고도 젖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내 마음속에 이미 다른 생각이 꽉 차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변화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내 욕심이 아니라 진실한 항복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듯, 내가 항복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일어납니다. 최고 화가의 손에 붙잡힌 화가지망생의 손은 먼저 자기 힘을 빼야 합니다. 최고 화가를 믿는 믿음으로 자기 의도를 내려놓고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전문가요 해결자이시며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 십자가를 믿는다면 철저하게 자기 생각을 내려놓는 완전한 항복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도 죄를 범하고 사울도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며 항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체면과 자존심을 붙잡고 끝까지 변명하며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다윗은 변화를 체험하며 하나님께 더욱 귀히 쓰임 받는 새 피조물이 되었고, 사울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끝까지 계속 변화의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죽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서신이 쓰여진 시간의 순서를 따라보면 고린도전서에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는 고백이, 에베소서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는 고백이 되고,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전서에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죄를 더 많이 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죄인 됨을 더 깊이 자각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자각할수록 십자가를 더 붙들게 되고,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화의 복을 계속 누리도록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날마다 자신의 죽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