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목록으로

2017년 4월 2일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토요일 새벽예배 때 최악의 홍수로 국토 절반이 비상사태에 빠진 페루의 송사무엘 선교사님이 보내준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도와야겠다,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토요일 거리선교를 위해 전날 오후부터 또 이른 새벽부터 나와서 수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은혜와 능력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을 찾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설명하는 안전 수칙을 보면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는 위급 상황에서 먼저 자기가 쓰고 난 다음에 동반한 어린이에게 씌워주라고 알려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을 도우려면 내가 먼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때도 내 몸을 먼저 탄탄히 묶어서 떠내려가지 않게 하고난 다음에 들어가야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골3: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내 능력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시험과 문제 앞에 금방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늘의 능력은 풍성합니다. 메마르지 않고 올바른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그래서 먼저 예배에 성공하여 위의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욕심을 버려야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높이 나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먹은 것도 금방 배설해버리고 뼛속까지 텅텅 비게 해서 가볍게 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죄의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관리하려면 욕심을 관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욕심을 자극하여 빼앗는 사기꾼에게 당하는 사람은 순진한 사람이 아니라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기꾼 같은 원수마귀도 동일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예배나 절기를 놓친 것이 아니라 탐심을 버리지 못한 경우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버려야 할 욕심과 탐욕을 버리지 못하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어서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생각이 모이는 곳이다. 나쁜 생각이 모이면 마음이 병들고, 육신도 병들고, 결국 삶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고난이 민족 대명사와도 같은 유대인들은 역사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애굽에서 종노릇 430년, 광야 40년,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로마시대의 게토 생활, 그리고 나치의 핍박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난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 문학이 없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도 어려움을 이긴 이야기로 신앙과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증오의 힘은 파멸과 죽음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이겨낸 사람들만이 살아남았고 역사는 그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부정의 에너지가 아니라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며 끝없는 감사를 회복하여 긍정의 에너지로 새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