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3일
불평과 원망 그리고 기도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에서 코리텐 붐은 자기와 여동생 베스티가 유대인을 도와준 이유로 나치에 체포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코리와 베스티는 라벤스브룩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수백 명의 죄수를 수용하는 마루침대가 즐비한 막사에 밀어 넣어졌을 때, 그곳의 불결함과 악취와 비참한 모습으로 인해 치를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위가 상하고 구토증이 나서 더러운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그곳에는 벼룩이 우굴 거리고 있었습니다. 코리는 울먹이는 소리로 ‘베스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라고 말하며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베스티는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 하셨잖아!’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성경이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복음을 들을 사람이 그곳에 많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베스티는 벼룩에 대해서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라고 하셨어. 즐거운 환경에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야, 벼룩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환경의 일부분이야.’ 코리는 그때의 감정을 말했습니다. ‘침대 옆에 서서 벼룩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릴 때 나는 베스티가 정말 잘못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두 자매는 그들이 다른 죄수들과 기도하고 상담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 감시원의 저지를 받지 않은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감시원은 막사 안에 가득한 벼룩 때문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던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재앙의 기적, 홍해바다를 건너는 기적, 매일 만나가 임하는 기적,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는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툭하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무서운 애굽의 바로왕과 전차부대, 그리고 홍해바다를 건너는 위험 가운데서 한 명도 죽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10명의 정탐꾼은 그 자리에서 즉시 죽고 함께 동조했던 이십 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만한 자로 계수된 자 601,730명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는 불평과 원망은 마귀가 주는 것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대 현대인의 특징은 만족이 어렵다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불평과 원망이 많다는 것입니다. 불만족의 틈새를 노리는 현대 광고의 대부분은 ‘아직도 그것을 쓰고 있습니까? 아직도 그것을 하고 다닙니까?’ 하면서 비교하게 만듭니다. 비교하게 되면 만족은 사라지고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또 부분에 대해 원망불평하면 반드시 전체로 다 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밥상에서 한 가지 반찬으로 불평하면 금방 전부 다 안 먹게 됩니다. 이민생활의 작은 어려움으로 불평하기 시작하면 금방 이민생활 전부를 부정적으로 대하게 되어서 결국 성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영적으로도 이단이나 악한 자들이 와서 하는 일은 먼저 작은 불평을 슬금슬금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방 전체로 불평이 퍼지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결말은,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바울이나 코리 텐 붐으로 하여금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며 즐거워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불평과 원망 그리고 기도’ 가운데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도 삶의 순간순간에 어느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