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예수 그리스도가 길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서양사를 한마디로 함축할 정도로 의미 있는 말입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국가, 로마가 천년 제국을 이루며 고대 서양 문명의 축으로 부상한 배경과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책 ‘로마인 이야기’ 10권에 나오는 글입니다. ‘기원전 3세기에 지구의 동쪽과 서쪽에서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되었다. 동쪽에서는 만리장성, 서쪽에서는 로마 가도. 중국과 로마는 왜 국가 규모의 대 토목사업을 시작하면서 한쪽은 방벽을 건설했고 또 한쪽은 가도를 건설했을까? 방벽은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지만, 가도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시킨다. 국가 방위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이민족과의 왕래를 차단할 것인가, 아니면 왕래를 촉진할 것인가? 두 민족의 이 같은 사고방식의 차이는 결국 중국과 로마라는 두 강국의 운명까지 결정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로마의 도로망, 이 둘의 차이는 분명 지구의 동과 서의 차이보다 훨씬 컸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조선 시대까지도 우리 선조들은 적극적으로 길을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소달구지나 수레가 다닐 정도의 길만 만들고 큰 길로는 한양에서 의주에 이르는 길이 그중 낫다고 했는데, 이는 중국 황제의 칙사가 행차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방도로는 도로랄 수도 없을 정도로 논이나 밭 사이에 난 좁은 논두렁길이나 울퉁불퉁하고 질퍽한 진창길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은 극심한 반대를 뚫고 1970년 완공한 경부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전국에 건설된 고속도로는 빠른 물류 이동을 가능케 하여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육지만이 아니라 바다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고, 우주에도 인공위성이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세계에는 길이 없겠습니까?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럼 누가 그 길을 갈 수 있습니까? 그 길은 육체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돈으로도 못 가고 힘으로도 못갑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믿음의 뜻을 세워야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간 삭개오도, 부르짖어 요청한 맹인 거지 바디매오도, 옷가에 손만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행한 12해 혈루병 앓던 여인도, 이미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은 회당장 야이로도, 다니엘처럼 다윗처럼 뜻을 세웠기 때문에 구원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뜻을 세워 믿음으로 예수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길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알려주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길을 다 간 다음에서야 잘못된 길이라고 깨닫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고통이지 않겠습니까? ‘가든지 보내든지 돕든지’의 사명을 통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