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8일
인색함이 없는 아즈카라의 은혜
히브리어로 ‘아즈카라’라는 말은 일부분을 가지고 전체로 여겨준다는 의미로 중요한 말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가운데 동물이 아니라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라는 제사에서, 밀가루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다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한 웅큼만 집어서 드립니다. 그 때 집어든 그 한 웅큼을 “아즈카라” 라고 합니다. (레2:9)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여기에서 “기념할 것”이 ‘아즈카라’인데, 하나님은 한 웅큼을 드릴 때 그것을 전체라고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즈카라’는 히브리식 사고방식의 바탕에 깔린 중요한 생각들 중 하나입니다. 성경을 보면 일주일 중 안식일을 온전히 드릴 때 일주일을 다 드린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또 십일조의 헌금도 일부분이지만 전체를 다 드린 것으로 여겨주시고, 성찬에서도 작은 떡 한 조각을 예수님의 몸 전체로, 작은 잔은 예수님의 피 전체를 나누는 것으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남자 여자가 사랑할 때나 결혼할 때 반지를 주고받는 데,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사랑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주고받지 않습니까? 이렇게 작은 것이지만 전체 사랑의 징표가 되는 것으로 기념할 때, 그것을 ‘아즈카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즈카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전체로 여겨주시는 일부분을 드림에 인색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분에서 인색하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전체를 함께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풍성할 때 하나님의 풍성함을 전체에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보면 그의 삶의 한 부분이었지만 인색함이 없이 전심으로 최선을 다해 통곡하며 서원하여 기도합니다. (삼상1:10-11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본문에서 “나를 기억하사”라는 단어가 ‘아즈카라’입니다. 비록 작은 한 부분의 기도이지만 인색함이 없이 전심으로 최선을 다해 통곡하며 서원하여 기도하였더니 한나의 인생 전체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인색함과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기는 다 하는 것 같은데, 늘 뒤에 쳐져서 인색하게 억지로 간신히 하나님의 일을 하면 내 인생 전체에 풍성한 하나님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도나 선교를 할 때도 어떻게 하면 안 갈까를 연구하며 인색하고 억지로 행하면 그것은 그냥 한 부분의 행위로 끝나고 맙니다. 하지만 문제나 일이 생기고, 몸이 아파서 못 갈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자원하는 기쁨과 앞장서는 믿음으로 갔더니 그 다음 내 인생 전체에 함께 하셔서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들을 간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색함이 없는 ‘아즈카라’의 은혜로 예수 생명과 성령의 충만함이 넘쳐흐르는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