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6일
거리가 가까운 것이 복입니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촌은 아들들과 딸들이 낳은 손자들 간의 촌수로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러니까 거리가 가까운 이웃은 거리가 먼 혈육보다도 더 친밀한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관계 중에 최고의 관계를 말할 때 ‘식구’라고 말합니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관계로 거리가 가까운 관계 아닙니까? 초대교회에 나타난 놀라운 하나님 부흥의 비결을 말할 때도 날마다 함께 밥을 먹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운 관계였음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신앙은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내 필요를 채우고 내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게 좋아지면 결과적으로 다 얻게 되는 열매이자 선물이기에 먼저 하나님과 관계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복음15장의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억지로 유산을 받아내어서 돈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 멀리 타국을 갑니다. 아버지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니까 그의 삶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서 곧 흉년 속에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 배가 고프니까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단하여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품에 안겨 거리가 가장 가까워졌더니 아버지가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시고 책임져주시고 새롭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탕자와 달리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을 때 그것으로 인해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까워졌습니다. 처음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랍비여’라고 불렀지만, 고기를 풍성히 잡은 기적의 사건 후에는 호칭이 주님이라는 의미의 ‘퀴리오스’로 바뀝니다. 베드로는 물질의 풍성함으로도 주님과 거리가 가까워졌기에 그것이 베드로의 운명을 바꾸는 복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몸의 가시를 그대로 두셨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언제 병이 또 일어날지를 몰라서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기에 오히려 더 큰 권능을 증거 하는 주의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신앙을 분명히 확인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거리가 가깝습니까, 아니면 세상과 더 거리가 가깝습니까? 나의 업적이 무엇이냐 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거리가 더 중요합니다.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를 자랑하기보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을 함께 볼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충만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꿈과 희망인 소중한 자녀들이 세상보다도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도록 바르게 인도하는 부모님들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