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4일
죄인 만드는 세상, 의인 만드시는 예수님
얼마 전 대한민국 육군 대장을 공관병에게 갑질했다는 이유로 별건 수사까지 하며 싹싹 뒤지고 털더니만, 결론으로는 네 차례의 숙박, 식사 등 184만원을 수뢰했다는 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평생을 군과 국가를 위해 살아왔다는 군인에게 적군의 장수가 포로로 잡혀도 하지 않을 모멸과 수치로 ‘죄인 만들기’를 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평생 한국 새벽예배의 부흥을 이루고 교회성장을 위해 살아왔던 대표적 장로교회와 목사님을 몇 가지 부분의 허물로 전부를 ‘죄인 만들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배도, 배역, 배신의 마지막 시대가 될수록 원수마귀는 세상의 권력과 언론과 다수 대중 등의 힘으로 사람들을 더욱 옭아매고 죄인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특히 신실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환난에 넘겨주며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 잡아주고 미워하는 일들이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게 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의인 만들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한 여인을 간음의 현장에서 잡았다며 죄인으로 몰아세워 죽이려고 할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말씀하시며 여인을 살려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또 면전에서 3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며 도망친 베드로를 만났을 때도 그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하시며 그를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의 하나님과 함께 했던 요셉은 흉년의 어려움으로 찾아온 형들을 만났을 때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의 파렴치한 죄들, 즉 어린 동생을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던 죄, 살인하려고 하면서 옆에서 식사를 한 파렴치한 사실, 구덩이에서 애걸하는 동생을 외면한 일, 노예 상인에게 단 돈 은20을 받고 팔아먹은 일,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거짓말한 그런 죄악들을 폭로하고 나서, ‘애굽의 총리인 나는 그래도 저들을 용서한다.’라고 외쳤다면 요셉은 극적인 반전으로 최고(?)의 의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형들을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만드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신약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부각시키기 위해 세리의 악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죄인 만들기’를 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혹시 우리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서 나의 의로움을 나타내려는 마음과 행동은 없습니까?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은 참소자입니다. 남의 허물과 죄를 지적하면서 ‘ 죄인 만들기’를 하면 잠깐 자기는 의로워 보이고, 또 부정적인 세력이 결집되어 파워가 생길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사탄이 역사하는 일시적인 힘일 뿐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다른 사람을 ‘의인 만들기’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복된 마음과 삶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이 흘러 세상은 더 밝아지고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문제,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은혜와 능력에 더욱 집중하여 의인 만드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복된 그리스도인 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