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8일
신앙은 중심 이동입니다.
신앙생활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중심 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침례나 성찬도 주인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자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자아는 반성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아는 노력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자아는 오직 죽어야만 합니다. 신앙은 예수님 십자가와 함께 자아를 죽이는 싸움입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새로운 피조물의 새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아가 죽고 예수님으로 중심이 바뀌면 믿음의 담대함이 생깁니다. 자아는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심과 의지만으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인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죄 지은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운 이유는 환경 때문이라기보다는 죽지 않은 자아 때문입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기 방어로 강한 척 하지만 진정한 용기와 자유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습니다.(히10:19) 보혈의 피를 의지하면 하나님 앞에 담대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세상이 두려워지지 않습니다. 두려운 것은 성격의 문제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죽지 않은 자아의 문제입니다. 중심이 부활의 주님으로 바뀌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또한 자아가 죽고 주님이 주인이 되면 건강한 생각과 비전이 회복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건강한 생각과 비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데 자꾸 모른 척 그냥 넘어갑니다. 점점 무덤덤해지면서 육신의 생각과 세상의 욕심으로 채워집니다. 결국 흑암을 광명이라 하고 악을 선하다고 하는 “화인 맞은 양심”이 되고 맙니다. 오직 진리이신 주님이 중심이 되셔야만 악을 악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높은 관점으로 변화가 일어나, 과거의 상처에 포로 되지 않고 내일의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더욱 간절한 기도가 나오고 열정이 넘치는 헌신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아가 죽고 주님이 주인이 되면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주님의 압도적인 은혜로 채워지니 미울 사람이 미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웃의 아픔이 보여 돌아보게 됩니다. 높은 울타리를 친 개인주의의 삶에서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공동체의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자아가 죽지 않으면 자기를 우선하게 됩니다. 자기 주장, 자기 소리를 들리게 하기 위해 목에 힘줄을 세우지만 점점 사람들은 떠나고 결국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지고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주인이 되면 타인을 섬기는 여유가 생기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자신감도 넘쳐납니다. 주변에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랑의 힘이 기능하는 선순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축복의 통로가 되어 기쁨과 풍성함을 누리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자아’에서 ‘하나님’으로 중심 이동입니다. 정말 내 자아는 죽었습니까? 이제는 십자가에서 끝내야 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주인 되시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선포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