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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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8일

본질에 충실하면 나머지는 이루어집니다.

한국에서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나누어 먹기 위해 과자를 사는데 잘 알 수가 없으니 포장이 멋진(?) 것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포장을 뜯어서 먹는 순간부터 양과 질에 있어서 겉과 속이 너무 다름에 실망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처음 보는 여자 분들의 나이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피부나 외모로 보아서는 젊은 나이 같았는데, 나중에 실제 나이를 알게 되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놀라곤 합니다. 사회 풍조와 세상 흐름에서도 그렇습니다. 깊이 숙고하고 남을 살리는 지혜가 담긴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흐리건 말건 대중들의 인기몰이에 어울리는 자극적이고 세속적인 말이 힘을 얻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포장과 껍질, 외모와 외양이 주인이 된 듯한 세상문화가 더욱 판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껍질과 눈속임의 포장은 잠깐은 시선을 끌어당기고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참된 행복과 변화를 이루지도 못합니다. 껍질은 본질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바로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것이 종교인들의 비본질적인 껍질을 벗겨내고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추구하기를 원하셨던 본질은 무엇이고, 종교인들이 붙들고 있었던 비본질은 무엇입니까? 본질은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신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고, 거기에 비해 복음이 아닌 모든 것들은 비본질적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아닌 다른 것들은 비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본질이라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은 비본질입니다. 추수감사절 온 교인이 함께 먹는 터키는 감사절의 본질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이웃과의 화목이 본질입니다. 비본질인 터키 때문에 본질인 감사와 화목을 잃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직분과 자리는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직분과 자리는 생명과 복을 주지 못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예수님이시며, 예수님 머리 되신 교회 공동체에서 성령 충만함으로 영생의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질에 충실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본질을 붙들려다가 정말 중요한 본질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독일의 괴테가 쓴 소설 파우스트에 ‘껍질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뱀은 정기적으로 껍질을 벗어야만 자신을 유지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뱀이 나쁜 음식을 먹거나 병에 걸리면 껍질을 벗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좀 다니다보면 비본질인 형식과 습관의 껍질이 우리를 둘러 덮습니다. 이런 껍질을 벗지 못하면 예수님이 책망하셨던 종교인들과 같이 우리의 신앙도 죽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비본질의 껍질을 벗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으로 은혜가 넘쳐나는 본질적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본질입니까, 비본질입니까?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