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3일
혁명과 충성
세상은 언제나 새로움과 개혁을 요구합니다. 인간이 사는 곳은 약점과 불공평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움과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혁명적 부류가 있고 묵묵히 충성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부터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세계사에 길이 남은 인간 혁명의 상징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를 상징하는 절대왕정의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부상한 자본가 계급에 의해 근대 민주주의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본질상 부정적인 힘, 원망과 불평, 미움과 분노 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사상 최초의 인민재판이 행해지기도 했었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략 17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고 추정합니다. 또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즉결 처단하기 위해 단두대를 최초로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베는 공포정치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혁명은 또 다른 혼란을 부추겨서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으며, 단두대를 만든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만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격한 시위와 불복종으로 몸살을 겪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역사에 뿌려진 씨앗을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새로움과 개혁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향해 충성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보여준 남북이 통일되고 번성하는 새로움과 개혁은 목동의 삶이든, 광야나 전쟁에서든, 하나님을 향해 충성된 다윗의 믿음을 통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또 바울이 보여준 세계 선교의 새로움과 개혁도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목숨까지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충성으로 인한 부흥의 결과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을 기념하며 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최고의 새로움과 개혁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 분의 방법은 혁명입니까, 충성입니까? 시작점이 없는 전능하신 우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어린 아기로 탄생하셨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워서 말똥말똥 바라보며 꼼지락거리고 소리를 내는 것뿐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아이처럼 누가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말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유아가 되신 것은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찔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리고 천민의 마을인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충성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삶의 모습은 혁명과 불복종이 아니라 충성된 삶의 모습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도 그를 반대하는 무리를 향해, 심지어는 시험하는 사탄을 향해서도 힘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향한 한결같은 충성뿐이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빌라도를 없애버리거나 헤롯왕을 상대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충성의 태도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바로 그러한 예수님은 사망을 이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은 은밀하게 역사하시지만 실수가 없으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최고의 새로움과 개혁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성탄을 감사하며, 혁명이 아닌 충성을 다짐하는 믿음의 예배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