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6일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달력만 바뀌는 시작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위대한 새 역사의 시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헬라어로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카이로스’이고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입니다. 먼저 카이로스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나타난 의미 있는 시간, 특정한 시간을 말합니다. 시간은 비록 흘러가지만,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에 이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부릅니다. 특히 하나님의 활동이 전개되고 위로부터 임하는 그 분의 계획이 실현되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 순간’이라는 뜻을 가진 신의 이름이 카이로스인데, 앞머리는 숱이 무성한 대신 뒷머리는 대머리이며, 어깨와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있을 뿐만 아니라 양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머리가 무성하여 정면에서는 잘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카이로스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기 때문이며,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려있는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인데,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저울처럼 정확한 판단과 칼 같은 결단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크로노스는 일반적 의미의 흘러가는 시간을 뜻합니다. 즉 2018년이 지나고 2019년이 되는 연대기적 시간을 말합니다.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으로 매일 한 번씩 어김없이 낮과 밤이 찾아오고,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시간으로 매년 한 번씩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오는 시간입니다. 인간과 동식물들이 생기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시간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성공자들은 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면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붙들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고 있을 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순종하여 카이로스의 시간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 하던 팔십 노인, 모세도 호렙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때부터, 세계 최강의 나라 애굽의 바로왕을 굴복케 하고 이스라엘 이백만 민족을 구원해 내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사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바울로 새 출발하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줄로 긋고 내 삶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어떠한 의미 있는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나의 삶은 그냥 흐르는 시간 속에 갈수록 쇠약해지는 크로노스의 삶이었는지, 아니면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해 가치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들을 살았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6-17)고 간곡하게 권면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세상의 헛된 욕심을 위해 시간을 다 낭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 땅의 자기 체면이나 자리나 직분을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2019년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붙들고 세계선교의 역사를 이루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