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8일
바른 교훈과 다른 교훈
봉투 안에 싱싱한 사과와 썩은 사과가 함께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썩은 사과가 싱싱해지지 않고 다 썩게 됩니다. 비싼 고급 자동차에 폐차한 차의 부속 하나를 끼우면 2~3만 개의 나머지 부속이 다 새것이라도 얼마 가지 않아 고장이 나게 됩니다. 상식적이고 공의로운 사람들의 모임 가운데 부정적이고 고집스럽게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전체 분위기가 깨어지고 다 고통스러워집니다. 이게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이기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즉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새 생명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나면서 마르다와 마리아와 온 동네가 슬픔에 빠져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예수님이 오시니 사망의 슬픔이 부활의 기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이 오시니 모든 사람들이 감동 받고 존경하는 새사람으로 삶이 바뀌어졌습니다. 저주의 병으로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버림받았던 혈루병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더니 치료가 임하고 간증이 되었습니다. 죄와 어둠에 묻혀있던 큰 성읍 니느웨에 요나 선지자 한 사람이 복음을 전하였더니 성읍이 회개하고 다 살게 되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질병과 가난과 저주를 다 이기고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예수님을 구세주와 교회의 머리로 믿는 것이 바로 ‘바른 교훈’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원수마귀는 거짓의 영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에 ‘바른 교훈’과 대적하는 ‘다른 교훈’을 교묘히 퍼뜨립니다. ‘다른 교훈’은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복음을 흐리게 합니다. 인간의 공로나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나 회개 없는 값싼 은혜나 세속적 성공 등으로 성도들을 미혹케 합니다.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값없이 얻는 구원을 상품화하거나 직통계시나 신비한 체험 등으로 자기 추종자를 만들려고 합니다. 번영신학이나 다원주의와 같이 인간의 욕심과 세상 가치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Not I But Christ’가 안 되게 합니다. ‘바른 교훈’이 경건으로 열매가 나타난다면, ‘다른 교훈’은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온갖 혼란과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는 것도 성경말씀에 근거한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조지폐를 감별하기 위해 진짜 지폐를 분석하고 바르게 앎으로 구별해 내는 것처럼, ‘바른 교훈’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처’와 ‘목적’과 ‘열매’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가르침의 ‘출처’가 성경말씀입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인기 있거나 내가 보기에 괜찮은 것입니까? ‘목적’이 나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유익을 주고 연합을 이루는 ‘열매’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이 많이 일어나는 말세가 될수록 ‘다른 교훈’을 물리치고, ‘바른 교훈’으로 예수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