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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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가치가 ‘없는 자’가 아니라 가치를 ‘잃어버린 자’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있었습니다. 거기에 우리 민족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3.1절도 겹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소식들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대립과 갈등이 극과 극을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한국에서의 현 정권과 구 정권은 물론이거니와, 보수와 진보, 기독교와 현 정부와의 갈등을 비롯해서 한국과 일본의 대립과 갈등이 크게 보였습니다. 거기에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과 반대 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매일 언론에 거론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한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청문회 주장으로 인한 갈등은 장난이 아닌 듯싶습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의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참된 믿음의 본을 보여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을 대할 때에도 가치 ‘없는 자’로 보지 않고 가치를 ‘잃어버린 자’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잃어버린 자’는 원래 가치가 있었는데 지금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가치를 ‘잃어버린 자’라면 도와주고픈 마음과 함께 잃어버린 것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가치 ‘없는 자’라면 버려야 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요 제거 대상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누가복음19장에 나오는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으로 모든 사람들과 갈등하는 사람, 미움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한국이 일제치하에 있을 때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이나 선량한 사람들을 잡아 괴롭히는 조선인 순사처럼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이 바로 세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시 사회에 공유된 생각으로 동족 유대인의 등을 쳐서 로마에 세금을 바치고 자신의 배를 불리는 매국노인 세리장을 대하시는데도 가치 ‘없는 자’로 여기지 않으시고 가치를 ‘잃어버린 자’로 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리고 배척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주시고 그의 집에 가셔서 이 사람도 원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시며 그를 회복시켜 구원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이데올로기에서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할 때는 대부분 자기편만 중요하게 여기거나 우선순위를 자기편에 두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과 다른 기독교는 분명히 원수까지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만 중요하고 나머지는 적으로 생각하여 제거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 전형적인 인본주의라면, 반대편에 서서 나를 대적하는 사람이라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모두를 향해 가치 ‘없는 자’가 아니라 가치를 ‘잃어버린 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배척하고 미워하고 보잘 것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가치 ‘없는 자’라고 하지 않고 ‘잃어버린 자’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참된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가든지 보내든지 돕든지’의 사명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