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4일
감사의 표현이 능력 있는 인생을 만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이름이 많이 나오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세 번째인 모세는 740번 이름이 나오는데, 다윗은 1,118번이나 나옵니다. 사실 다윗의 삶에는 누구보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과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받는 막내가 아닌 잊혀진 막내로 자라며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각오를 키웠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광야에서 아버지의 양을 돌보며 사자와 곰과 싸우기, 사울이 정신적으로 고통 받을 때 불려가 하프를 연주하며 노래하기, 집안의 힘든 심부름하기 등 투 잡, 쓰리 잡을 뛰며 강인한 삶을 훈련했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후부터는 사울 왕의 시기로 최소한 10년 이상 광야 도피생활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주변의 블레셋, 모압, 아람, 암몬, 에돔 등의 나라들과 계속 되는 전쟁을 해야 했고 또 여러 번의 내란과 반역들을 격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고백과 그가 부르는 노래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여호와를 송축하라”였습니다. “송축하라”는 히브리어로 ‘바라크’인데, ‘감사하다. 기억하다.’ 라는 뜻으로 여기서 같은 어원의 Thanks, Think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다윗의 삶에서는 언제나 시작할 때 하는 일이 감사였고, 마지막 때 해야 할 일이 감사였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마음에 합한 자라 하셨고, 다윗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과 연결된 능력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경험의 느낌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가정, 학교, 결혼, 직장과 일,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형통과 고난, 성공과 실패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면 그것은 무엇을 기억하느냐의 차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좋았던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이고, 반면 불행한 사람들은 나쁜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이나 사실은 가치중립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고 다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선별하여 내게 의미 있고 필요한 것들을 알고 기억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마귀는 언제나 잘못된 것, 섭섭한 것, 억울한 것에 집중하게 하고 기억나게 합니다. 피켓을 들거나 인터넷 등을 이용해서 ‘억울하다. 부당하다. 당했다.’ 불평과 원망을 표현하게 합니다. 한 번 표현되면 몇 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마음에 상처와 어둠을 갖고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독교 명문 가정이나 신앙이 좋은 곳의 문화는 언제나 좋은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부모님에게, 조부모에게, 심지어는 조상들과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기억을 가지고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이 지나도 그 감사를 잊지 않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선진국에 가보면 후진국에는 없는 ‘기념관’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랑이 아니라 감사하는 것이고 또 배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은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이 전 세계에 새롭게 만든 절기, 추수감사절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모든 음식과 대화와 선물들과 함께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감사를 표현하는 은혜가 넘쳐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