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LA Full Gospel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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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8일

파라볼라노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

처음 기독교 복음이 전파될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공개적인 전도가 불가능했고 모임도 핍박의 대상이 되곤 했었습니다. 250년 로마의 데시우스 황제는 로마의 옛 문화를 재생시킨다는 미명하에 기독교에 대한 범제국적이고 조직적인 박해를 가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252년 부터는 엄청난 전염병이 15년 동안 온 로마 제국을 휩쓸어 거리에는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많은 시체들이 나뒹굴 정도였으며 죽음의 그림자는 온 로마제국을 뒤덮었습니다. 그 때 카르타고의 감독인 키프리안(Thascius Caecilius Cyprianus)은 죽음의 공포 속에 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마태복음5장43~48절의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우리가 단지 우리(그리스도인)들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내리셔서 씨앗들을 기르시고 이러한 모든 선하심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만일 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전염병이 돌고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도 사랑하자고, 그리고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자고, 성경의 가르침을 외쳤다고 전기 작가인 폰티우스는 전합니다. 감독 키프리안의 설교는 성령의 큰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한 사람씩 일어났습니다. 그들도 감염 위험에 두려웠지만, 핍박하던 원수를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고 병든 자들을 품었습니다. 시신을 거두고 노약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자기 주머니를 털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집을 내놓았습니다. 눈물겨운 헌신으로 지극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두려움에 꼼짝 못하고 부유한 자들은 도망가기에 급급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의 헌신 덕분에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위기상황이 지나고 난 후 기독교는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을 이기고 사랑을 실천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들은 ‘파라볼라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신문에 이름을 내고 사진을 싣기 위해 잠깐 쇼를 하듯이 자기자랑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므로 예수 생명의 새 역사를 이루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병원균에 온 세상이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서 부정적인 가짜뉴스와 허위와 혐오의 정보 바이러스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포의 사재기와 원망, 괜한 미움과 증오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나만 살겠다고 숨거나 남의 탓과 원망에 빠지기보다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파라볼라노이’가 되어 믿음과 사랑을 실천한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 참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