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4일
익숙함과 편안함을 이겨야 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모든 사람들은 좋은 변화와 성장, 또 풍성한 열매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런 새 역사의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익숙함과 편안함을 이겨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걸핏하면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민11:5) 하며 불평합니다. 물론 광야에서는 먹을 수 없는 애굽의 음식이 있다 할지라도 죽을 만큼 고생하며 노예 생활하던 곳이 뭐 그리 좋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낯선 광야보다 애굽이 익숙하고 편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가나안을 향해 가는 자유가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못 이긴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급격히 변했고 구원과 성장의 놀라운 열매를 얻은 사람입니다. 당시에 여리고의 세리장으로 부자인 삭개오는 ‘접촉 거부 대상’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웅성거릴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군중들의 반응은 경직되고 완고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삭개오는 반대였습니다. 삭개오는 어른의 체통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집에 같이 가자는 예수님의 제안에 터져 나오는 기쁨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집에 오시자 즉각적인 결단과 헌신을 다짐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순수하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고백입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결단이 분명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놀라운 구원과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이 읽어야 할 고전 중 하나인 에릭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면, 왜 현대인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지에 대해 인간은 자유보다 익숙함과 편안함을 더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익숙함과 편함이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끝까지 방해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참된 자유와 복을 누릴 수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집에서 온라인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일이 익숙하고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다가 대면예배 드리는 것을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새 역사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이 기억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