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5일
무엇으로 먼저 채우겠습니까?
‘죤 벡’과 ‘토마스 데이빈 포트’가 쓴 ‘관심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보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심의 양은 결국 한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힘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생기면 다른 스포츠나 전쟁과 같은 큰 사건을 만들어 관심을 돌리려고 합니다. 사람의 관심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넘치는 인터넷 정보 속에 필요 없고 쓸데없는 가짜 정보가 너무 쉽게, 많이 전달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진짜가 들어갈 마음의 공간이 없어지는 치명적 약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긍정보다 항상 더 빠르게 전파되는 부정적인 것들이 먼저 마음을 선점하면 실제로 좋은 것들은 들어올 자리가 없어지고 맙니다. 특별히 마지막 시대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넘쳐나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는 대형 스캔들과 배신과 미움의 소식들과 불법이 가득할 것이기에,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분별은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동안 수많은 병자들을 고쳤고, 눌린 자를 진리로 자유케 했고, 하늘나라를 선포하며 오직 사랑과 희생으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따랐고 참된 소망으로 삶이 변화되었으며 구원의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을 만나고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특징은 다 “패역”한 세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패역’이란 완고함, 들으려고 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마음,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없는 마음입니다. 이미 자신들의 욕심과 편견과 고집으로 가득 차 있기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실패 이유도 그랬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13:2) 이미 마음에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이니까 예수님의 세족식 사랑도, 최후 만찬의 은혜도 그에게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받아들인 생각대로 행동하므로 결국 실패의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나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믿음의 롤 모델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제일 먼저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을 주시겠다는 비전을 주시고, 또 밤하늘의 뭇별을 세어보라 하시면서 자손이 이와 같이 많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사실 그 때 가나안의 상황은 기근이었고, 몸은 아이를 낳기에 이미 늙었지만, 먼저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을 채웠더니 아브라함 한 사람 때문에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게 되었고 한 민족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비전과 말씀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이것만이 하늘의 은혜와 능력으로 육신의 죄성과 세상의 염려와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길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다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하여주시는 원칙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먼저 하나님의 비전과 말씀으로 내 마음을 채워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