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7일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 로마신화에 의하면 제우스는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의 중심을 델포이라고 선포했고 그곳에 아폴로 신이 사는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델포이 신전의 문 위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을 새겨놓았다고 합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공통적인 인간의 삶은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답을 찾아야만 잘살 수 있는 여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삶의 뿌리를 옮겨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나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더욱 가깝게 와 닿는 문제가 바로 자신의 정체성과 자화상을 바르게 찾는 것 아닙니까?
시인 최승자씨는 ‘자화상’이란 시에서 어두운 의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 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아리의 슬픔이에요.” 윤동주 시인은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 연민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이렇듯 인간은 결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알 수가 없지만,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에 대한 진실한 지식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존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1권 제1장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으로 시작합니다. “진실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고 그 묵상 후에 낮아져서 자신을 면밀하게 살필 때까지는 진실한 자신에 대한 지식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세상은 온갖 풍조와 유행과 이슈와 정보들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네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므로 행복하라고 외치지만, 정작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만약 올바른 정체성과 자화상을 깨닫고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사는 것이 바쁘고 힘들고 남들이 뭐라고 해도, 예배와 말씀과 기도의 우선순위만큼은 타협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걸작품이며 예수님의 피 값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자임을 먼저 깨달으면 매일 매일 목적과 사명이 이끄는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일부터의 중고등부 연합 수련회와 성경암송, 한기다말과 감사노트 등이 하나님 안에서 나의 정체성과 자화상을 깨닫게 하는 복된 일임을 체험하는 믿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